아마 열 살 때였을게다.
그 때가 초등3년 때였으니까.
날도 화창한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이 십 년도 훨씬 지난 기억인데, 뜬금없이 자꾸만 떠오른다.
뭘 해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침마다 십 원 짜리 하나씩 아버지한테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공장노동자였던 아버지가 구두를 신는 일은 없었고.
그렇다고 심부름을 날마다 했던 것도 아니고.
좌우간 그래서 돈을 조금 모았더랬다.
구멍가게에서 나를 노려보는 맛난 것들의 눈길을 피해가며.
침발라가며 끈덕지게 숨겨두고 챙겼다.
무얼 살라고 그랬던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 며 칠 전부터 내 눈길을 훔치더니 내 마음마저 사로잡아버린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인천의 자유공원 만큼이나 유명했던 '인천극장'에서 상영하게 될 극장포스터가 그것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로보트 만화 영화.
당시에는 정말로 멋지기가 짝이 없는 태권V 훈이가 옆차기를 하고 있는 포스터.
온통 머리속에선 자나깨나 태권 옆차기가 둥둥 떠다녔다.
어찌나 보고싶었던지.
모아모아 두었던 그 심정은 내팽개쳐버리고, 토요일 정오에 급기야 바로 아랫동생 손을 끌고 극장을 향해 줄달음질쳤다.
근데 왜 데리고 갔을까. 또 밑에 동생 녀석은 왜 놔두고 갔을까.
돈이 모자랐던 걸까.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하한 매표소에서 내가 어물쩍대며 표를 끊는 동안,
동생 녀석은 내 뒤에 서서 심장이 콩닥대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을게다.
그 궁색했던 시절에 그 날 만큼은 둘이서 아주 호사스런 하루를 보내게 된 셈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 토요일이 첫상영 날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서서 빌붙어있을 자리마저 없었다.
그런데 떠듬떠듬한 기억으론 어떻게 해서였는지, 동생하고 둘이서 계단에 꼭 붙어 옹송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까까머리에 까무잡잡한 두 얼굴로.
그 신통하고 방통한 태권V의 이단 옆차기에 커진 눈망울로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박수치고 환호성도 질렀던가.
손에 땀이 나는 장면에선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있었던걸까.
도무지 거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끝이 나서 집에 돌아왔겠지만, 어찌 왔는지도 기억이 없다.
다만, 엄니에게 혼날까 싶어 전전긍긍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혹시 동생 녀석에게 '절대 극장 갔었단 얘긴 하면 안돼'라고 얘기 했던건 아닌지.
하지만 동생 녀석은 그 멋지고 신나는 장면을 입 꾹다물고 있었을 녀석이 아니다.
분명 그 날,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다. 분명... 멋지고 신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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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던 날들을 기억하며... by 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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