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이 사과를 하면 받아줄 용의가 있다...
허, 어이가 없어 정말로 꼭지가 돈다.
그 이야기는 100분 토론을 지켜봤던 시청자들을 하댓말로 뭉개고 바보 멍청이들이라고 욕했던 자가 이제 용서까지 해주겠다는 말인데...
이거는 분탕질의 정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 무슨 양아치도 아니고.

어제 아내에게 말했다. 한 동안은 극장가서 충무로 영화를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영화권력이 이토록 썩어빠졌다니 ...

MBC ...

2007.08.10 09:46

2007년 8월 9일 [MBC 100분 토론] ... [디 워]...
앞으로 MBC를 보는 일은 없을 듯 싶다.
그토록 막되먹은 방송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이 땅의 지식인 사회가 그토록 경직되고 그토록 고립된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토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진중권?! 글쎄 참 편협하고 옹졸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말할 가치도 없다.
MBC는 분명 심형래 감독과 또한 시청자에게 공개 사과를 해야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할 턱이 없겠지. 얼마나 고고한 자리에 있는 자들인데.
정말 "못됐다."

'시사저널' 문제가 언론 전체의 문제로 떠오른 모양이다.
'피디수첩'은 조심스럽게 삼성의 대언론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 별로 알고싶지도 되뇌고싶지도 않다.
어지간히 뻔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니까.
'청와대는 기사를 못빼도 삼성은 기사를 뺄 수 있다.'
언론에 떠도는 공공연한 사설같은 비밀이란다.
그래서 젊은 언론인들이 그런다고 한다.
옛날의 선배 기자들이 '펜의 힘이 칼의 힘을 이겼다'는 보여주었다면,
이제 자신들의 시기에는 '펜의 힘이 돈의 힘을 이겼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된다고 한다.

글쎄,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 않음에도 들려오는 말, 말, 말들.

적자생존이라 '사자'만이 살아남아서 야생의 세계를 호령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러면, 이곳의 야생말고 다른 땅덩이의 야생에 가서 호령하면 될 일일까?
글쎄, 다른 땅덩이에 더 큰 사자한테 통할까?
더구나 그 곳엔 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토끼 무리가 참 많을텐데.
야생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종은 강한 번식을 자랑하겠지만, 급속도의 몰락 내지는 전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자본이라는 시장에서도 좀 통하지 않으려나...
모를 일이다.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내 이야기 속으로 다시금 돌아가기.
지난 12월 가족 모임.
사진들.
매스컴이 온통 난리다.
이민영이 병실 침대에 누워 가련한 얼굴로 인터뷰하는 내용에선 그야말로 '이찬'이란 존재는 영락없이 죽일 눔이다.
인터넷에 대해 아직도 걸음마 수준인 우리 그니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져 이민영 관련 뉴스는 죄다 들여다보다 못해 어찌어찌하여 댓글까지 달았다 하니...
열기가 정말 부글부글하다.

그런데 매맞는 아내의 중독성 만큼이나,
때리는 남편의 중독성 또한 징글맞은 일인데,
그것도 '사랑'이란 범주에 넣어줄 수 있을까?
우리 그니 말로는 '자기식의 사랑으로 그것은 집착이고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라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 헌데 '이찬'이란 존재를 매스컴에서 보고 있자면 자신을 사랑하는 얼굴은 아닌 듯 하던데.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에,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주먹질로 애원을 하는 그런 존재로 보이던데... 글쎄, 모를일이다. 지난 시대의 '개같은' 사랑 타령들이 곳곳에서 끊이질 않으니...
인천의 '검단' 지역 신도시 지정.
                                  [개분양은 어떨지?^]
아파트 분양 선착순에서 추첨식으로 전환.
아파트 매도 계약 취소 소동.
온시선이 그곳으로 쏠리더니만...
그렇게 한바탕 난리법석이 나더니만...
그런데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언제나 반복되어온 주택정책의 역사물.
좀 색다른 것이 있다면, 건교부 장관의 기습적인 '신도시' 발표라는 점.
K가 말하듯, 참 급했나부다.
이 나라의 주택정책은 또 한 번,
'괴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그렇게 나타났다.
문제는 영화속 '괴물'은 죽기도 하건만,
이 '괴물'은 뿌리가 너무 깊고 넓어서 제거할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이 '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괴질'스런 기운을 온나라에 퍼뜨리고 있다.
정책당국은 '괴물' 퇴치에 대해 아무런 방안도 없어 보이는 듯이 그러하게...
혹시, '주택건설공사'로 하여금 '공공임대사업'만을 추진토록 하면 '괴물'을 막을 수 있으려나.
물론 뜬구름 같은 얘기지만. K의 말처럼, 언제라도 급해질텐데.


아마 열 살 때였을게다.
그 때가 초등3년 때였으니까.
날도 화창한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이 십 년도 훨씬 지난 기억인데, 뜬금없이 자꾸만 떠오른다.
뭘 해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침마다 십 원 짜리 하나씩 아버지한테서 받았던 기억이 난다. 공장노동자였던 아버지가 구두를 신는 일은 없었고.
그렇다고 심부름을 날마다 했던 것도 아니고.
좌우간 그래서 돈을 조금 모았더랬다.
구멍가게에서 나를 노려보는 맛난 것들의 눈길을 피해가며.
침발라가며 끈덕지게 숨겨두고 챙겼다.
무얼 살라고 그랬던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 며 칠 전부터 내 눈길을 훔치더니 내 마음마저 사로잡아버린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인천의 자유공원 만큼이나 유명했던 '인천극장'에서 상영하게 될 극장포스터가 그것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로보트 만화 영화.
당시에는 정말로 멋지기가 짝이 없는 태권V 훈이가 옆차기를 하고 있는 포스터.
온통 머리속에선 자나깨나 태권 옆차기가 둥둥 떠다녔다.
어찌나 보고싶었던지.
모아모아 두었던 그 심정은 내팽개쳐버리고, 토요일 정오에 급기야 바로 아랫동생 손을 끌고 극장을 향해 줄달음질쳤다.
근데 왜 데리고 갔을까. 또 밑에 동생 녀석은 왜 놔두고 갔을까.
돈이 모자랐던 걸까.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하한 매표소에서 내가 어물쩍대며 표를 끊는 동안,
동생 녀석은 내 뒤에 서서 심장이 콩닥대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을게다.
그 궁색했던 시절에 그 날 만큼은 둘이서 아주 호사스런 하루를 보내게 된 셈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 토요일이 첫상영 날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서서 빌붙어있을 자리마저 없었다.
그런데 떠듬떠듬한 기억으론 어떻게 해서였는지, 동생하고 둘이서 계단에 꼭 붙어 옹송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까까머리에 까무잡잡한 두 얼굴로.
그 신통하고 방통한 태권V의 이단 옆차기에 커진 눈망울로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박수치고 환호성도 질렀던가.
손에 땀이 나는 장면에선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있었던걸까.
도무지 거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끝이 나서 집에 돌아왔겠지만, 어찌 왔는지도 기억이 없다.
다만, 엄니에게 혼날까 싶어 전전긍긍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혹시 동생 녀석에게 '절대 극장 갔었단 얘긴 하면 안돼'라고 얘기 했던건 아닌지.
하지만 동생 녀석은 그 멋지고 신나는 장면을 입 꾹다물고 있었을 녀석이 아니다.
분명 그 날,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다. 분명... 멋지고 신나도록...

이방인적 사고

2006.09.25 23:28
'자본주의에 익숙해진다는 것... 남의 불행 위에서 과연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가...'
아직도 풀기 어려운 숙제와도 같다.
세상을 바라보고 있자면, 무기력에 빠질때가 있다.
어제, 버스에서의 일을 바라볼 때처럼.

용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맨 뒷자석 한 가운데 앉아 있었다.
평상시처럼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숙대 입구에서였던가.
한 젊은 엄마가 어림짐작으로 여섯 살 배기에서 네 살, 두 살 배기로 보이는 세 아이를 쪼르르 데리고 올라탔다.
두 살 배기는 한 쪽 팔로 안은채로 오똑이 서서는 나머지 아이들을 딸랑 남은 한 자리에 몰아 넣어 앉혔다.
그러나 차가 출발하면서 아이들의 엄마는 위태해보였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남은 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서 차의 요동에 따라 애기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나를 포함한 승객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도 많지 않은 버스에서 자리 하나 양보하는 것에 미적대는 모습들이란.
그 주변에 나이 든 사람부터 시작하여 젊은 청년들까지.
아이 엄마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떨군채 졸고 있는 듯 하거나 하는 모습들에서 어린 아이와 함께 2인용 좌석에 나라히 앉아서 돌아보며 힐끔거리는 또다른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에서나, 그 마음에 껄끄러움을 살짝 박힌 가시 정도로 여기면서 때아닌 갈등을 하는 우리들의 쪼그라든 마음의 크기란...
우리가 혹시 '일상'을 너무 어렵고 힘들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사람사는 세상이란 예나 지금이나 그 살아가는 모습들에 있어선 별반 차이가 없는가부다. 지치고 힘들고 괴롭고, 그러다가는 기뻐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어제 잠시 즐거워하다가는 오늘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가슴살의 절반이 타 들어가는 아픔에 번민하고. 그러다 누군가 '왜 사는건지 모르겠다'고 물을라치면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오늘 우리 그니처럼...


  아마도 우울증 비숫한 그니의 인간적 내력이 속내에서 또 발생한 모양이다.
이럴 때에는 도무지 방도가 없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증세를 보인다 해도, 딱히 내가 해 줄 말도 없고 방책도 없다. 예전 같으면 상대가 듣기에 그렇고 그런 시답지 않은 말들로 위로라도 해주었겠지만, 요새는 아무 소리 않고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날씨마저 우중충하니 가랑비가 내리다 말고 다시 내리기를 하는 형편이니.
  옛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람 인'자 모양 그저 어깨를 빌려주고 기대게 하는 수 밖에.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것이 또한 '세상'과 '나'가 소통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렇게 열린 세계에서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이 이젠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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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던 날들을 기억하며... by 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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